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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뮤직 페스티벌 대중화가 벌써 10년에 이르는데 그걸 준비하는 방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했다. 그냥 가벼운 복장을 하고 가벼운 짐을 지고 가는 것뿐이다. 일기예보 제대로 안 살피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의 각성이 따랐다. 체력을 비축하고 공연에 보다 몰입할 수 있도록 큰 맘 먹고 접이식 의자를 샀다. 그리고 지금은 열심히 아웃도어용 우비를 검색 중이다. 천원짜리 일회용 우비만 있으면 폭풍이 찾아와도 별 지장 없긴 하지만, 페스티벌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젊으며 여전히 젊게 살아갈 것이라 착각하기에 페스티벌에 계속 출석할 것이며, 값이 좀 나가는 의자와 튼튼한 우비는 장기전을 대비한 필수품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여간 2일차 공연은 의자와 우비로 요약된다. 비 오기 전까지 날씨가 10년 페스티벌 역대 최상급이었던 까닭에 이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공연을 누리는 동안 이것이야말로 무릉도원이 아닐까를 생각했다. 그러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걱정이 찾아왔다. 폭우 때문에 공연 일정에도 변동이 따랐다. 그런데 후다닥 의자를 접고 우비를 사와 그걸 입고 객석에 뛰어들자 모든 걱정이 일시에 사라졌다. 역설적으로 비오는 날의 바다 수영이 최고의 수영이라는 이야기가 수영 애호가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데, 적극적인 페스티벌 고어들 또한 여기에 맞장구를 쳐줄 만한 충분한 경험을 두고 있을 것이다. 최고의 공연은 폭우 속의 공연이다. 그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는 리스크를 안고 진행되지만, 그 스릴 때문인지 아니면 맨정신에 비를 흠뻑 맞을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뮤지션과 관중은 주어진 시간 동안 동시에 모든 것을 던지고 날려버린다.





재미있다. 러시아급 눈보라가 아닌 한 날씨는 페스티벌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비만 얘기해봐도 그렇다. 어떤 사람들을 김빠지게 하고 소극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비는 어떤 사람들을 더 적극적이고 순박한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린다. 뮤직 스테이지라는, 시티 브레이크에서 가장 작은 무대와 가장 작은 객석은 이 귀여운 미치광이들을 위한 소박한 아지트 같았다. 한편으로는 비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쾌청한 날씨와 아름다운 음악을 낭만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최적의 공간이었다. 결국 뮤직 스테이지는 짧은 시간 동안 낭만과 광기를 두루 살갑게 체험할 수 있었던 구역이다. 이 모든 것은 의자와 우비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간소한 장비 몇 개가 이토록 공연을 풍요롭게 만든다.



“앉아 계시면 엉덩이에 땀띠 나요”: 텐시 러브 & CUBA


비가 오기 전의 이야기다. 텐시 러브CUBA는 각기 다른 성격의 에너지로 큰 즐거움을 줬다. 공연의 문을 연 텐시 러브는 성의의 뮤지션이다. 첫 공연은 사람이 많지 않아 진이 좀 빠질 수 있는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공연을 위해 기존의 노래를 새롭게 편곡했을뿐더러 시티 브레이크의 섭외를 받고 너무 신이 나서 신곡까지 썼다고 했다. 두 보컬 전은수와 고지후는 원래 어떤 공연에서도 이렇게 방방 뛰어본 적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아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연신 관중에게 고마워했다. 이처럼 들뜨고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서서 흥분을 나누는 아티스트를 만나는 일은 언제라도 환영이다. 한편 CUBA는 호랑이 셔츠를 입고 나타났는데, 아주 적절했던 의상이다. 관중을 물고 삼켜버릴 것처럼 작정하고 나와 노래하고 연주한 밴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앉아 계시면 엉덩이에 땀띠나요”라며 거의 모든 관중을 일으켜 세운 뒤, 간절한 한 마디를 남기고 마지막 곡을 준비했다. “좀 더 늦은 시간에 좀 더 오래 공연할 수 있도록 성원해 주세요.”





폭우를 동반한 뜨거운 공연: 24Hours & 13Steps


폭우 속의 두 밴드를 소개한다. 당일 가장 뜨거우면서도 가장 시원한 공연을 남긴 밴드다. 24Hours가 무대를 세팅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공연이 열리자 물대포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런데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공연은 뜨거워졌고 객석은 달아올랐으며, 그게 자극이 됐는지 보컬 이승진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무대를 뛰어다녔다. 13Steps 또한 공연 시작 전후로 비 때문에 마음이 좀 불편했을 밴드다. 하지만 공연이 진행되던 동안 무대에서 펄펄 날아다니던 그들을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그 비를 맞으며 해드뱅잉에 열중하던 열혈 관중까지 있었을 정도이니, 악천후를 기꺼이 상대했던 뮤지션과 관객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만한 공연으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바람이 만든 노래: 로지피피 & 캣 프랭키 with 선우정아


옆 스테이지의 옐로우 몬스터즈가 땀의 공연을 진행하는 동안 뮤직 스테이지의 로지피피는 관중 대다수를 앉혀놨다. 시간은 오후 한시였지만, 저녁 일곱시쯤 불어올 법한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게 피부를 스쳐갔다. 전반적으로 포근한 멜로디를 유지하지만 류성희의 건강한 발성 덕분에 나풀거리지 않는 믿음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하이라이트 같은 건 없어도 됐다. 평화롭게 지속된 25분에 충분히 만족했으므로. 


호주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뮤직 스테이지를 찾은 유일한 해외 뮤지션 캣 프랭키는 예정과 달리 비가 그친 늦은 밤에 무대에 섰다. 그리고 의미있는 벗들이 곧 찾아왔다. 하나는 루프 스테이션, 즉 소리를 녹음하고 입혀서 사운드를 두텁게 만드는 장비였다. 이것만 있으면, 거기에 뮤지션의 창의력을 더하면 악기 없어도 훌륭한 곡이 완성된다. 또 다른 벗은 그녀와 두 곡을 함께 부른 선우정아다. 캣 프랭키의 <Almost Done>(둘다 영어로 노래했다)과 선우정아의 <뱁새>(둘다 한국어로 노래했다)를 함께 나눴는데,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가 만나 이룬 감동의 공연이 됐다. 덧붙여 선우정아가 퇴장 전에 남긴 말이 자꾸 생각난다. 그녀는 분명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오늘 집에 가서 따뜻한 거 드세요. 감기 조심하세요.”





추억할 만한 작은 음악회: 이아립


‘작은 음악회’를 연 것만 같았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드럼이 아닌 각종 다양한 타악기가 무대를 채웠기 때문이다. <현대카드 CITYBREAK 2014>에서 이루어진 모든 공연의 데시벨을 측정했다면 아마도 이아립의 목소리를 비롯해 연주에 이르기까지 그녀 음악의 수치가 가장 낮았을지 모른다. 유일하게 클래식 악기를 동반해 가장 잔잔하게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차별화된 공연,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공연이 됐다. 여섯 곡을 불렀을 뿐이지만 선곡의 폭도 넓었다. 페스티벌의 작별을 알리는 폭죽이 터져도 별다른 마음의 동요가 없었는데, 10년 전의 한 영화 사운드트랙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가 흘러나오는 순간 갑자기 뭉클해져서 시야가 흐려졌다. 적당히 놀고 일하러 페스티벌을 찾은 어느 관중을 갑자기 주책으로 만들어버린 공연이 거기 있었다. 







Writer.
이민희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채에 각종 음악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봄만 되면 페스티벌 일정을 확인하면서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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